이런 경우가 많습니다
전세자금대출을 받을 때 은행이 서류를 한 장 더 요구합니다. 임대인이 서명하는 질권설정 승낙서입니다. 보증금을 돌려줄 때 임차인이 아니라 은행에 직접 주겠다는 내용입니다.
계약이 끝나고 임대인이 관행대로 임차인 계좌로 보증금을 보냅니다. 임차인이 그 돈으로 대출을 갚으면 문제가 없습니다. 그런데 갚지 않거나 다른 데 쓰면 은행이 임대인에게 다시 청구합니다.
임대인은 이미 줬다고 하고, 은행은 나에게 줬어야 한다고 합니다. 여기서 누가 지는지가 이 글의 내용입니다.
질권이 무엇인가요
임차인이 임대인에게 가지는 보증금반환채권에 은행이 담보를 잡는 것입니다.
담보로 잡힌 뒤에는 그 돈을 받을 사람이 은행이 됩니다. 임대인은 채권의 상대방이라는 뜻에서 제3채무자라고 부릅니다. 승낙서에 서명한 임대인은 은행에 직접 지급하겠다고 약속한 셈입니다.
전세권을 설정하는 것과는 다른 제도입니다. 전세권과 확정일자의 차이는 전세권설정과 확정일자 편에서 따로 정리했습니다.
임대인이 임차인에게 직접 돌려주면 어떻게 되나요
대법원 2016다265689
임차인이 전세자금대출을 받으며 보증금반환채권에 질권을 설정했고, 임대인은 질권 설정 금액 범위에서 질권자에게 직접 반환하겠다는 승낙서를 썼습니다.
그 뒤 임대인이 그 집을 임차인에게 팔면서 매매대금채권과 보증금반환채권을 상계했습니다. 보증금을 현금으로 돌려주는 대신 매매대금에서 빼는 방식으로 정산한 것입니다.
대법원은 이렇게 보았습니다.
질권설정을 통지받거나 승낙한 뒤에는, 임대인이 질권자 동의 없이 임차인에게 변제하더라도 질권자에게 대항할 수 없습니다. 질권자는 민법 제353조 제2항에 따라 임대인에게 직접 청구할 수 있습니다.
상계 합의도 마찬가지입니다. 돈이 실제로 오가지 않았을 뿐 변제와 같은 효과를 노린 것이므로 질권자 동의가 없으면 그에게 대항하지 못합니다.
결과적으로 임대인은 임차인과 정산을 끝냈는데도 은행에 다시 지급해야 하는 처지가 됩니다. 이중지급의 위험을 임대인이 그대로 지는 구조입니다.
질권 승낙서에 확정일자가 왜 필요한가요
승낙서만 받아 두면 충분한 것 같지만 한 단계가 더 있습니다.
대법원 2018다21326
보증금반환채권에 근질권을 설정하면서 임대인으로부터 확정일자 있는 승낙을 받아 둔 사건입니다. 그 뒤 임차인의 다른 채권자가 같은 보증금에 압류와 전부명령을 받아 돈을 받아 갔습니다.
대법원은 압류·전부명령이 송달되기 전에 질권자가 확정일자 있는 문서로 민법 제349조 제1항의 대항요건을 갖췄다면, 전부채권자는 질권이 붙은 채로 채권을 넘겨받을 뿐이라고 보았습니다. 임대인이 전부채권자에게 지급했더라도 질권자에게는 대항하지 못하고, 질권자는 여전히 임대인에게 직접 청구할 수 있습니다.
승낙서에 확정일자가 있느냐가 나중에 나타난 압류채권자와의 순위를 정합니다. 날짜를 증명할 수 없는 승낙서는 이 국면에서 힘을 잃습니다.
질권이 걸려 있으면 계약 갱신이 안 되나요
은행이 갱신을 막을 수 있는지도 문제 됩니다.
대법원 2020다223781
은행이 임대주택 보증금반환채권에 근질권을 설정한 뒤, 임대차가 끝났다고 주장하며 임대인을 대위해 임차인에게 집을 비우라고 청구한 사건입니다.
대법원은 임대차의 묵시적 갱신이 질권 목적 채권 자체를 소멸시키거나 불리하게 바꾸는 것이 아니므로, 질권설정자의 권리처분을 제한하는 민법 제352조의 제한을 받지 않는다고 보았습니다. 임대차는 질권자에 대한 관계에서도 존속합니다.
은행 질권을 이유로 임차인이 나가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대출 회수 시점을 관리하는 것은 대출약정으로 풀 문제이지 임대차를 끊어서 해결할 문제가 아닙니다.
그래서 나는 어떻게?
임차인이라면
임대인이라면
